몇 년 전 주변에서 "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산다"는 말이 돌 때, 저는 이상하게도 불안보다 의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 동료 대부분이 대출을 최대한 끌어모아 집을 샀고, 저도 그 흐름을 따라갈까 고민했지만 결국 멈췄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제 자산 전부가 한 곳에 묶이는 게 너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망설임이 오히려 선택지를 넓혀준 셈이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은 안전자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안전'과 '유동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자산구조의 함정, 집 한 채에 모든 걸 걸면 생기는 일
한국 가계의 자산 구조를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드러납니다. 50대 가구의 순자산은 평균 5억 5천만 원 정도인데, 이 중 4억 6천만 원이 부동산입니다(출처: 통계청). 결국 현금성 자산은 9천만 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ROE(자기자본이익률)'처럼 기업 재무제표에 쓰이는 개념을 가계에 적용해 보면, 자산의 84%가 비유동자산에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ROE란 자기 자본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가계로 치면 '내가 가진 자산으로 얼마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가'와 같은 의미입니다.
저는 이 구조가 왜 위험한지 몸으로 느낀 적이 있습니다. 주변 지인 중 한 분이 집값이 오를 때 대출을 끌어모아 아파트를 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됐습니다. 그분은 집은 있었지만 당장 생활비를 마련할 현금이 없었고, 집을 팔자니 시세보다 낮게 급매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손해를 보고 팔았고, 그 과정에서 신용등급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저는 확신했습니다. 자산의 절대적 규모보다 중요한 건 '유동성 비율'이라는 것을요.
일본의 사례도 시사점이 큽니다. 일본은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약 30년간 집값이 하락했고, 도쿄 인근 아파트가 피크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경우도 많았습니다(출처: 일본 국토교통성). 당시 일본 가계도 한국처럼 자산의 60% 이상을 부동산에 보유하고 있었는데,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House Poor)'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 하우스푸어란 집은 있지만 현금흐름이 없어 생활이 어려운 상태를 뜻합니다. 한국도 지금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인구 감소와 경제 둔화가 겹치면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인적자본이라는 가장 강력한 엔진
일반적으로 재테크라고 하면 주식, 부동산, 펀드 같은 금융상품을 떠올리지만, 제 경험상 가장 확실한 수익원은 '내 몸값'이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투자 공부에 시간을 쏟다가 오히려 본업에서 성과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깨달은 건, 직장인에게 가장 큰 투자 엔진은 '직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란 개인이 가진 기술, 경험, 건강 등 미래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전체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계산해보면 인적자본의 가치는 놀랍습니다. 예를 들어 퇴직 후 90세까지 한 달에 50만 원씩 근로소득을 벌 수 있다면, 그 현재가치는 약 2억 원에 해당합니다(금리 2% 가정 시). 이는 지금 당장 2억 원을 예금에 넣어둔 것과 경제적으로 같은 효과입니다. 저는 이 계산을 직접 해보고 나서, 투자 수익률을 쫓기보다 업무 역량을 키우는 데 시간을 더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고, 그로 인한 소득 증가가 계좌 수익률보다 훨씬 컸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일은 단순히 돈만 주는 게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소속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70세 남성의 46%가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쓸모 있는 존재'로 남고 싶어서 일합니다. 한국도 조만간 같은 상황을 맞을 것이고, 그때를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평생 현역'이라는 마인드를 갖춰야 합니다. 저는 30대 후반부터 제 전문성을 어떻게 노후까지 연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지금도 본업 외에 강의나 자문 같은 부가 소득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장기투자와 분산, 그리고 돈의 역할 나누기
투자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단기 수익'에 집중하다가 '장기 구조'를 놓치는 것입니다. 저도 초반에는 단타 매매에 손을 댔지만, 결국 시간과 감정만 소모했을 뿐 수익은 미미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시장 리스크(Market Risk)'와 '개별 종목 리스크(Specific Risk)'의 차이였습니다. 시장 리스크란 전체 시장이 흔들릴 때 모든 자산이 함께 떨어지는 위험을 말하고, 개별 종목 리스크는 특정 기업이나 자산만 문제가 생기는 위험입니다. 전자는 장기투자로, 후자는 분산투자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돈의 성격을 세 통장으로 나눴습니다.
- 6개월 이내 쓸 돈: 예금·MMF 등 안전자산
- 1~3년 내 쓸 가능성 있는 돈: 채권형 펀드나 변동성 낮은 상품
- 장기 목적 자금: 주식·ETF 등 성장형 자산
이렇게 나누고 나니, 시장이 흔들려도 마음이 덜 흔들렸습니다. 왜냐하면 각 돈마다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단기 자금을 투자로 굴리려 하면 가격 변동이 곧 생활 불안으로 이어지지만, 장기 자금은 '기다릴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 하락을 견딜 수 있습니다.
또한 '정액 적립식 투자(Dollar Cost Averaging)'의 위력도 직접 체감했습니다. 정액 적립식이란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투자하는 방식인데, 가격이 떨어질 때는 더 많은 수량을 매수하게 돼 평균 단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저는 2020년 코로나 당시 시장이 급락했을 때도 정액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이후 반등 국면에서 큰 수익을 거뒀습니다. 만 원에 시작해서 2천 원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만 원으로 돌아온 펀드가 있다면, 정액 투자자는 원금 대비 약 2배의 평가액을 갖게 됩니다. 이게 바로 시간 분산의 마력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부동산에 올인하지 않고 자산을 나눠 놓은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저에겐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금융자산과 꾸준히 소득을 창출하는 인적자본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동산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산의 전부가 되는 순간, 선택지는 사라지고 불안만 커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를 모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눠 뒀느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산의 역할을 재점검하고, 인적자본을 키우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면, 노후는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