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우리는 17세기 금세공업자가 은행으로 진화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화폐 혁명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등장하면서 지폐 중심의 금융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국가 간 경제 주권을 둘러싼 지경학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에 진심인 이유, 그리고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역사적 전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보관증서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화폐 혁명의 구조
17세기 영국에서는 금이 화폐로 사용되었고, 금세공업자가 고객의 금을 보관하며 금보관증서를 발행했습니다. 이 증서는 "당신의 금을 보관하고 있으며 요구 시 즉각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문서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실제 금을 거래하는 대신 이 금보관증서를 거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양떼목장 주인이 양 300마리를 사려할 때, 무거운 금화 대신 금보관증서를 건네며 "이것으로 거래합시다"라고 제안하면 상대방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금보관증서가 금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실물 금이 아닌 지폐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금세공업자는 지금의 은행으로 진화했습니다.
2025년 현재, 똑같은 구조의 전환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전개되고 있습니다. 써클이나 테더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는 17세기 금세공업자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코인 구매자가 1달러를 주면 발행업체는 1코인을 발행하며, 이는 항상 1대1 원칙으로 교환됩니다. 삼성전기와 미국 삼성전자 지사가 수출입 대금을 정산할 때, 기존에는 한국 은행에서 여러 결제망을 거쳐 미국 현지 은행까지 도달하는 데 2박 3일이 걸리고 각 단계마다 수수료가 부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면 그룹 계열사끼리 즉시 결제가 가능하며 수수료를 크게 절감할 수 있습니다. 코인 구매자 입장에서는 거래 효율화와 지급 정산 속도 향상이라는 명확한 이익이 존재하므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발행업체 역시 막대한 이익을 얻습니다. 현금을 수취할 때 수수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수취한 현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여 안정적으로 약 4%의 수익률을 영위합니다. 이는 민간기업이 국가기관처럼 앉아서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금에서 지폐로의 전환이 금세공업자를 은행으로 만들었듯이, 지폐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은 테더와 써클을 새로운 금융 권력 주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화폐 발행과 유통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금융 구조의 재편입니다.
미국 국채 시장과 스테이블코인의 전략적 결합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에 진심인 이유는 미국 국채 시장의 구조적 필요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은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도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입니다. 미국 정부는 부채 한도를 증액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놓았지만, 국채를 발행했을 때 누군가는 이를 매입해주어야 합니다. 중국이라는 대규모 국채 매입처가 매도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는 새로운 안정적 매입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시티뱅크는 2030년이 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의 미국 국채 보유액이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최대치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미 현재 스테이블코인 업체들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한국이 보유한 규모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매입력이며,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국채를 팔 수 있는 새로운 경로가 열린 것입니다. 안정적인 매입처가 확보되면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할 수 있고, 이는 확장적 재정 투입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에브리띵 랠리'와 '디베이스먼트'로 연결되며, 유동성 확대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경제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지경학적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중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금지하고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추진하며, 자국 기업들에게 "CBDC로 결제하면 수출해 줄게"라는 식으로 압박하면서 세계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비중을 늘려왔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야욕을 차단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우방국들은 CBDC를 사용하고, 미국과 우방국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구조로 세계 금융 시장이 양분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지경학적 분절화이며, 화폐를 통한 세력권 확장 경쟁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통화 주권을 지키는 방어 전략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원화의 국제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국제화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가 원화를 사용하고 있는 범주만큼은 최소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공격적 확장 전략이 아니라 방어적 생존 전략입니다.
만약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없다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원화를 완전히 삼킬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무역 결제나 외환 거래, 해외여행 시 달러를 사용합니다. 이런 용도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국내 민간 소비나 정부 지출까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화가 사라지고, 한국의 통화 주권이 상실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금리 결정에 따라 한국 경제 전체가 좌지우지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미국이 금리를 조정하면 한국 경제가 그 영향을 직접 받아 휘청이게 됩니다. 이는 경제 주권의 상실이며,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구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원화의 영역을 방어하고 통화 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최소한 국내 거래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원화 기반 결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합니다.
투자 관점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주목할 영역입니다. 스테이블코인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 예를 들어 결제 시스템 제공업체, 카드 결제 인프라 기업, 스테이블코인 발행 플랫폼 등이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할 것입니다. 특히 은행들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 시작하면, "우리 은행이 투자해주는 기업인데 우리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투자 더 많이 해줄게"라는 식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생깁니다. 스테이블코인끼리는 특별한 경쟁력이 없지만, 은행 공동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생태계 전체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우위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화폐의 역사는 금에서 지폐로, 지폐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금융 권력의 재편이며, 국가 간 통화 주권을 둘러싼 지경학적 전환입니다. 사용자 비평이 지적했듯이, 이 글의 가장 큰 강점은 화폐 변화를 연속적인 구조 전환으로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연결시킨다는 점입니다. 다만 금보관증서가 국가 제도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던 것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민간 주도이며 규제 환경도 불확실하다는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으며, 이 변화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경제 주권과 개인 자산을 지키는 길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 🟣내년에 '이 변화' 눈치챈 사람만 자산 늘릴 겁니다 - 김광석 교수 2부 '20분 경제과외'
채널명: MKTV 김미경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