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외국인이 대량 매도할 때마다 불안했습니다. "역시 외국인이 먼저 알고 빠지는구나" 싶었고, 커뮤니티에 "외국인 순매도 14조"라는 숫자가 뜨면 바로 공포 모드로 전환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 초반, 특정 대형주가 이유 없이 4~5%씩 밀리는 걸 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호가창이 사람 손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일정 간격으로 칼질하듯 물량이 쏟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외국인이 판다"는 말 대신, "무엇이 같이 움직이나"를 먼저 보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매도의 80%는 알고리즘
많은 분들이 외국인 매도를 보면 "한국 시장이 비싸다고 판단한 거 아닐까" 생각하는데, 저는 실제로 체결 패턴을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 매매의 약 80%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글로벌 금융 시장 전체로 보면 89%가 AI 기반입니다.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의 주식 트레이딩 플로어에는 2000년대만 해도 600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 두 명만 남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컴퓨터 엔지니어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지금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주식을 아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조건 충족 시 자동 실행되는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금 가격이 급락하면, 금에 50~100배 레버리지를 건 헤지펀드는 마진콜을 맞습니다. 그럼 알고리즘이 즉시 작동해서 주식을 쏟아냅니다. 이건 한국 주식이 싫어서가 아니라, 증거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 '팔 수 있는 것'부터 파는 겁니다. 한국 시장은 유동성이 좋아서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긴급 매도의 1순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외국인이 이렇게 많이 팔면 끝난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뭉텅이 매도가 나온 뒤 며칠 지나면 금방 복원되는 걸 몇 번 겪고 나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날짜에 5조, 6조씩 한 번에 쏟아지는 건 대부분 이벤트성 매도였습니다. 비트코인 급락, 금·은 가격 폭락, 미국 국채 금리 급등 같은 외부 충격이 동반될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마진콜과 자산배분 리밸런싱
"진짜 외국인"과 "기계 외국인"을 구분하는 법이 있습니다. 진짜로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떠나는 외국인은 꾸준히 팝니다. 하루에 3천억씩, 5천억씩,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덜어냅니다. 그러면서도 시장은 오히려 잘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장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천천히 비중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2006년 당시가 그랬습니다. 외국인이 1년 내내 팔았는데 주가는 계속 올랐습니다.
반면 마진콜성 매도는 다릅니다. 갑자기 하루에 몇 조씩 쏟아지고, 다음 날부터는 또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건 펀드 내부 사정 때문에 억지로 판 거지, 밸류에이션 판단이 아닙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연기금의 자산배분입니다. 캘리포니아 연기금 같은 대형 기금은 목표 수익률이 정해져 있고, 자산 배분 비중도 엄격하게 고정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흥국 주식 비중이 3%인데, 한국이 많이 올라서 5%가 되면 자동으로 2%를 잘라냅니다. 이것도 기계적 매도입니다.
제가 예전에 기금 운용을 공부하면서 느낀 건, 이런 펀드들은 주식이 더 오를 걸 알면서도 팝니다. 왜냐하면 위험 관리 때문입니다. 반대로 다른 자산(예: 미국 주식)이 더 많이 올라서 한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 다시 사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을 모르고 "외국인이 팔았다"는 숫자만 보면, 공포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외국인 ETF 자금 유입과 앞으로의 흐름
최근 한국 주식형 펀드에 지난주 52억 달러가 유입됐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코스피를 6,400~7,000포인트로 전망했고, JP모건, 씨티 같은 외국계 증권사들도 줄줄이 목표치를 올렸습니다. 헤지펀드들도 10년 만에 아시아 최대 규모 매수에 나섰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런 흐름이 시작되면 외국인은 한 번 사면 계속 삽니다. 추세를 타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외국인이 몰려 들어오는 게 무조건 좋은 신호는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외국인이 왕창 들어오면 그게 꼭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ETF 자금은 사기도 쉽지만 빠지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외국인 매도는 대부분 이벤트성이었고, 한국 기업의 가치 때문에 판 게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제 경험상, 외국인 매도가 두려울 때는 환율, 금리, 채권 변동이 동시에 확산되는지, 업종별 이익 추정이 꺾이는지, 시장 내부 신용에 경색 징후가 있는지를 먼저 체크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저가'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도 됩니다. 물론 항상 맞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공포에 끌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외국인 매도 숫자 하나로 공포를 확정하기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먼저 봐야 합니다. 마진콜인지, 리밸런싱인지, 알고리즘 트리거인지를 구분하면 대응이 달라집니다. 앞으로도 국채발 위기 같은 이벤트가 또 올 수 있지만, 그때마다 "진성 매도인가, 기계 매도인가"를 판단하는 습관이 계좌를 지켜줄 겁니다.